PACE사역

평신도목회는 PACE와 항상 함께 사용된다. 평신도목회는 큰 그림이고, 그 중에 하나가 PACE이다. 평신도목회는 개념이고 PACE는 구체적인 실천사항이라고 볼 수 있겠다. 우선 PACE는 현재 미국 오하이오에 살고계신 멜빈목사님께서(Dr. Melvin J. Steinbron) 30여 년 전에 평신도들이 사용할 수 있는 내용을 [돌봄]의 측면에서 만들다보니 소위 머리글자로 외우기 쉽게 4가지로 정리했다 (Prayer, Available, Contact, Example). 즉 교회 안에서 성도들이 ‘해야 할 일,’ 또 ‘할 수 있는 것,’ 그리고 지금까지 ‘잘해온 것’을 목회자 팀과 평신도 팀이 함께 모여서 수 십 가지 아이디어를 내었는데, 그 중에 공통적인 것, 즉 공통분모로서 PACE를 만들어 낸 것이다.

PACE는 다른 성도들을 [돌보는] 측면에서 만들어진 것이기에 ‘평신도의 목회적 돌봄 사역(lay ‘pastoral care’ ministry)’으로 불리워지고, 이 사역을 하는 사람들을 평신도목회자(lay pastors)로 명명하였다. 요약하면 PACE는 요한복음 21:17절(‘내양을 치라’)에 주로 근거한 돌봄 사역의 도구라고 보겠다 (물론 엡4:11-12절을 먼저 전제로 하고). 이 방면의 자료는 멜빈목사님이 많이 개발해놓으셨고, 또 마지막 세 번째 책까지 완료되어 지금 미국에서 출판 중에 있다.

이런 것을 염두에 두면서 이제 [평신도목회/lay ministry]를 생각해보는데, 평신도목회라는 용어를 한국에서 공식적으로 사용하신 분은 김상복목사님으로 1990년 할렐루야교회에 부임하시면서 [평신도목회연구원/lay ministry academy]을 설립하여 시작하심으로 부터였다. 물론 평신도목회자라는 용어도 처음부터 쓰셨지만 한국교회 앞에 공식적으로 내놓으신 것은 2000년 6월의 [평신도목회자컨퍼런스]였다(주강사: 탐페리스, 김상복, 옥한흠). 평신도목회의 용어는 엡4:11-12에 근거한 것으로 간단히 말하면 목회자는 “사역자에서 훈련시키는 자”로, 평신도는 “성도에서 사역자가” 된다는 패러다임 쉬프트(Paradigm Shift)를 의미한다. PACE는 패러다임쉬프트가 필요치 않지만 평신도목회는 이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결국 PACE는 평신도의 [돌봄사역]이고, 평신도목회는 [평신도사역자]로 전환되는 귀한 차이가 있다. PACE는 평신도목회에 포함될 수 있다. 그러나 평신도목회는 곧 PACE사역이라고 단정 짓기는 어렵다. 멜빈목사님도 처음에 이것을 나에게 분명히 가르쳐주셨다. “PACE는 평신도목회의 여러 부분 중에 하나이다.”

현실적으로 교회는 ‘평신도목회’를 절대적으로 필요로 한다. 그러나 출발은 PACE로 하는 것이 좋음을 발견해왔다.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패러다임쉬프트를 요구하기는 목회자와 성도, 그리고 교회에 부담이 되기 때문이다. PACE는 초/중/고 수준이며, 평신도목회는 대학/대학원 수준이라고 비유해서 말할 수도 있다. 그 만큼 차이가 있다는 뜻이다. 물론 순서가 패러다임쉬프트가 먼저 된 다음 PACE가 들어가는 경우도 있긴 하다.

교회 상황에 따라서 요구하는 경우가 다양하다. 어떤 교회는 PACE만을 원하고 그 정도로 만족하는 경우, 또 어떤 경우는 패러다임 쉬프트를 간절히 원하는 경우이다. 우리가 설립하고 추진하는 학교도 이 두 가지가 공존한다고 본다. 아주 약한 경우는 PACE를 넣어주고, 좀 성장하고 성숙된 교회는 평신도목회라는 패러다임 쉬프트를 심어주는 것이다. 즉, 현재 건축 중인 [평신도목회 대학원대학교, 익산시 덕기동]는 PACE와 함께 평신도목회 두가지를 제공하여야 한다는 명제를 가지고 있다. 패러다임쉬프트를 통한 성숙까지 가야 한다는 것이다. PACE는 돌봄이라는 한계와 울타리를 갖고 있기에, 다양하고 전반적인 목회에 대해서는 다루기가 불편하다. 그러나 평신도목회는 한계와 울타리가 없이 무제한으로 발전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

한 번 더 얘기하면 패러다임쉬프트가 일어나지 않은 경우는 평신도목회를 한다고 말할 수가 없다. 그것은 용어만 빌려 쓴다거나 흉내만 낸다는 것 외에는 없다. 또한 평신도를 활용한다고 해서 평신도목회를 하는 것은 더 더욱 아니다. 이것이 바로 에베소서 4:11-12절에서 의미하는 것이고, 현대교회에 필요한 개념이다.

평신도목회는 목회자들에게는 부담이 되지만(변화와 훈련시킴에 대한), 또 그만한 값어치가 있게 된다. 평신도들에게는 힘들긴 하지만(사역을 해야 한다는) 삶의 의미와 보람이라는 혜택이 반드시 주어진다.